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흙수저가 되었다.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복싱장에서 불만을 가득 담아 샌드백을 쳤다.
하지만 실패자로 살고 싶지 않아 20대 초반부터 장사에 인생을 걸었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배짱, 어머니의 배려심, 그리고 남다른 열정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해서인지 겁 없는 도전으로 수차례 실패의 고통도 맛봤다.
“초등학생 때 사람들이 갑자기 집에 들어와 곳곳에 빨간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 압류딱지가 떨어지면 잡혀가는지 알고 조심해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1993년 11월에 대한 아들의 회상이다.
하루 아침에 재산을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됐던 부도,
아들의 남모를 아픔을 요즘 들어서야 알았다.
당시 부도의 고통 보다 절망하는 내 자신이 곱절 아팠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달했다.
젊은 시절 링에서 스파링하며 숨이 차오를 때 코치의 외침이 떠올랐다. ‘마, 이 순간만 참아!’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남들보다 반 발짝 앞선다는 신념으로 1분 시간까지 아끼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었다.
특히 품질 좋고, 디자인 멋지고, 가격이 착한 가성비가 주효해
가두매장 실용주의 캐주얼로 크게 성공했다.
소상공인 출신이어서 대리점 사장님들과 끈끈했고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국민들이 행복한 순간에 찾는 옷을 선보였다.
이런 부침 있는 인생이 우리 사회,
특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된다면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바쁜 일정 가운데 강연을 300여 차례 해왔다.
“반드시 기회는 있습니다. 힘들 때 마다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흙수저인 제가 그랬듯 힘내십시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섬유패션업계에도 희망의 불씨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 도전했다.
2011년 취임한 한국의류산업협회장일 때 도전을 포함해 두 번의 고배를 맞고
세 번째 도전 끝에, 2023년 주위 분들의 많은 성원 덕분으로 회장직에 올랐다.
회장으로서 처음으로 한 일이 현장 출신답게 현장의 애로를 청취하는 ‘카라반’ 활동이다.
대구, 부산, 경기 등 생산현장 곳곳을 부지런히 방문해 열정을 전하며 해결방안도 찾았다.
협회장 재임 2년여를 뒤돌아보면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지만
특유의 열정으로 다부지게 뛰고자 한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온 국민에게 희망의 서막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중견기업인으로 매장 사장님들과 국민들이 행복하게 노력하고,
내가 은혜를 입은 섬유패션산업의 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매년 초 ‘새신발’ 캠페인을 벌여왔다.
‘새롭게 신바람나게 발로 뛰자’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이 새롭게 출발하는 지금, ‘새시대 새신발!’을 외친다.
역경을 이겨내고 열정과 긍정 에너지로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힘차게 뛸 때다.